호랑이 도우미의 암실

흥미로운 사진의 역사 열두 번째, 19세기 예술사진. - 사진에 입문하기

 

 

19세기 예술사진

 

당시 오랜 시간 동안사진은 탄생 되었을때부터 미술의 영역에 해당하는 예술이라고 주장해왔다. 

 

인물사진, 풍경사진은 물론 정물, 누드 그리고 종교적 우화까지도 사진의 주제가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부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사진은 예술의 영역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1800년대 프랑스 예술가들은 "사진은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영혼이 없는 것일뿐더러, 정성과 사유의 결과인 예술인들의 회화작품들과 비교할 수 없다.” 고 공식적으로 주장하였다. 

 

사진가들의 입장에서 위와 같은 주장은 불쾌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사진도 역시 또다른 종류의 회화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1837년 다게르가 찍은 최초의 ‘다게레오타입’ 사진 기술에서는 신 고전주의 회화 스타일의 구도를 같은 정물들로 그런 생각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사진가들이 사진에 회화 스타일을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1850년~1870년대까지 회화 스타일의 사진이 유행했는데, 당시 인기가 있었던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을 말한다.

 

특히 헨리 피치 로빈슨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진가중 한명이었기도 했지만, 당시 사진을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한 사람들 중 한 명이기도 하였다.

 

그는 우화적이며 설명적인 합성 사진을 만드는것으로 유명하다.

 

사전에 작품의 내용을 치밀하게 짠 후, 여러 장면의 사진을 인화하여 합성을 시키는 방법으로 최종적인 사진을 완성하였다.  

 

그는 19세기 사진에 있어 고급예술운동의 선구자였는데, 어떤 방법을 사용하던 상관없이 아름다움과 예술적인 효과를 만드는 것에 옹호하는 것이었다.

 



 


헨리 피치 로빈슨의 임종 1853


헨리 피치 로빈슨의 고급예술사진은 낭만주의 문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상상으로만 가능한 장면을 합성사진 기법을 사용하여 실현할수 있도록 완성하였다.

 

참고로 위의 사진 '임종' 은 모델들은 따로 촬영후 합성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자연주의 예술사진의 등장. 

 

피터 헨리 에머슨은 먼저 언급된 회화스타일을 추구하던 예술사진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사진이 우리가 보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포착하는 것이 카메라의 능력이라는 점을 충실히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회화스타일을 적용한 사진가들의 합성 인화, 인위적으로 연출된 모델들과 배경, 일생생활 등에 대해 비난하였다고 한다.

 

에머슨은 자연주의 사진에 대해서 나름대로 개념을 정리하였는데, 아래와 같다.

 

  • 장비를 단순화 할것.
  • 조명 또는 모델의 포즈, 의상 등으로 속임수를 쓰지 말 것. 
  • 특정 규칙에 따르지 말고 독창적인 구도를 사용할 것.
  • 수정(후보정)을 하지 말 것.

또한 그는 사람의 눈이 장면을 인지하는 방식에서 나온 과학적인 초점 기법을 신뢰하였다.

 

그 초점 기법이란 초점이 맞는 피사체를 제외한 배경에는 초점이 약간 벗어난 것 즉, 아웃포커싱을 말한다.

 

 

그는 사진은 미술을 모방하지 말고, 억지로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효과를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 이스트 앵글 라인 늪지에서 촬영한 농부들의 사진으로 자신의 이론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그도 시간이 지나서 '사진은 예술이 아니라 과학과 예술의 시녀 로서의 역할을 하였을 뿐'이라고 말을 번복하였지만, 그의 최초의 신념은 회화를 모방하지 않는 사진 그 자체를 예술 이라하는 새로운 세대의 사진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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